외국인, 반도체 팔고 전력기기 담나? 12차 전기본이 만든 수급 변화

외국인, 반도체 팔고 전력기기 담나? 12차 전기본이 만든 수급 변화

외국인이 반도체를 대규모로 팔고 있다는 뉴스는 익숙하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전력기기 종목 하나에는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는 소식도 같이 들린다. 단순한 순환매일까, 아니면 AI 데이터센터發 전력수요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가 반영되기 시작한 걸까. 어제 다룬 9월 증시 캘린더에서 짚었던 전력망 병목 이슈를, 이번엔 실제 수급 데이터로 확인해본다.

🔍 외국인, 반도체는 팔고 전력기기는 담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외국인이 반도체에서 전력으로 갈아탔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48조원을 순매도했고, 그중 삼성전자가 약 72조원, SK하이닉스가 약 57조원으로 매도 1·2위를 차지했다. 8월에도 흐름은 이어져서 8월 1일부터 23일까지 12거래일 동안 삼성전자만 7조5000억원 넘게 팔아치웠다.

업종 단위로 봐도 흐름은 비슷하다. 최근 2~3주 사이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반도체 대형주 대신 전력기기·방산·조선 같은 인프라 성격의 종목들이 번갈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직 “전력기기가 반도체를 대체했다”고 보기엔 표본이 짧지만, 반도체 쏠림이 느슨해지는 신호로는 볼 만하다.

그중 눈에 띄는 종목이 하나 있다. 8월 넷째 주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 전력기기 관련주인 LS ELECTRIC이 3위로 올라왔다. 8월 31일에는 같은 종목의 미국 빅테크向 배전기기~초고압변압기 패키지 수주 확대 가능성이 증권가 리포트로 제시되기도 했다.

즉 “반도체 전체에서 전력 전체로” 자금이 옮겨갔다기보다는, “반도체 대형주 매도는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전력기기 종목에 선택적 매수가 나타났다”가 지금 시점에서 더 정확한 표현이다.

📊 12차 전기본, 숫자로 보면 이렇다

이 국지적 매수세가 왜 지금 나오는지 이해하려면 지난 8월 20일 공개된 12차 전기본 전력수요 재전망을 봐야 한다.

구분 기존 전망(4월) 재전망(8월)
2040년 최대전력(기준) 131.8GW 158.4GW
2040년 최대전력(상향) 138.2GW 165.0GW
첨단산업 순증분 +20.6GW
데이터센터 순증분 +7.9GW

4개월 만에 전망치가 26.6~26.8GW 높아졌다. 이 증가분을 1.4GW급 APR1400 원전 설비용량과 단순 비교하면 약 19기 규모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 환산이지, 실제로 원전만으로 채운다는 뜻은 아니다.

반도체 부문만 따로 보면 변화가 더 뚜렷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준공과 호남권 산업단지 신규 조성이 반영되면서, 반도체 부문 2040년 최대전력 전망이 14.4GW에서 35.8GW로 두 배 넘게 늘었다. 반도체 투자 확대 자체가 전력수요 증가의 핵심 축인 셈이다.

⚡ 발전소만 지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흔히 “원전주 사면 되겠네”로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기를 만드는 것과 필요한 곳까지 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 구조는 이전에 다룬 AI 시대 전력 병목 글에서도 짚었던 지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늘어나면 전력 수요가 늘고, 발전량을 늘려야 하고, 그 전기를 실제 수요지까지 보내려면 송전선로·변전소·변압기 같은 전력망 투자가 동시에 필요하다. 지금 가장 눈에 띄는 병목은 변압기다.

🏭 변압기가 반도체만큼 귀해진 이유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몰린 미국이 상황을 잘 보여준다. 주요 업체의 표준 전력용 변압기 납기가 평균 128주(약 2년 6개월) 수준으로 거론될 정도이고, 발전소용 승압 변압기는 144주를 넘는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 공급 부족을 국내 전력기기 3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가 파고들고 있다. 1분기 기준 세 회사의 합산 수주잔고는 37조원에 달하고, 증권가에서는 2026년 합산 영업이익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 그래서 외국인은 왜 관심을 가질까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를 “어느 쪽이 더 좋은 산업이냐”로 비교하는 건 이번 이슈의 핵심이 아니다.

반도체는 AI 수요 자체는 강하지만 밸류에이션 부담, 금리, 관세 같은 단기 변수가 계속 붙는다. 전력 인프라는 12차 전기본을 통한 정책 방향과 실제 수주잔고를 통해 중장기 투자 확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구간이다.

다만 이건 아직 개별 종목 단위의 움직임이지, 업종 전체로 확산됐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 한 줄 요약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확대로 12차 전기본 전력수요 전망이 크게 상향된 가운데, 외국인 자금은 반도체에서 전력 인프라로 완전히 이동했다기보다는 일부 종목에 선택적으로 유입되는 초기 단계에 가깝다.

💬 독자 의견

반도체 이후 시장의 다음 자금이 전력 인프라로 넘어간다면, 전력기기·송배전·원전·ESS 중 어디를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까요?

이 글은 투자 판단을 위한 참고 자료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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